2009년 06월 14일
故노무현대통령 서거
# by | 2009/06/14 22:40 | 故 노무현 | 트랙백 | 덧글(0)
2004년 1월 5일 새천년민주당의 조순형(趙舜衡)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언급하면서 본격화된 탄핵은, 같은 해 3월 5일 대통령이 선거중립의무 위반과 측근비리 등에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하지 않을 경우, 새천년민주당은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는 특별기자회견을 하였다.
대통령이 사과를 거부하자, 3월 9일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 공동으로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탄핵저지를 위한 국회 본회의장 농성에 들어갔다. 3월 11일 오후 탄핵소추안이 처음으로 국회에 상정되었으나, 열린우리당의 물리적 저지로 무산되었다.
3월 12일 새벽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진입해 여야 의원들의 대치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오전 11시 5분쯤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이 국회 경위들과 함께 본회의장에 들어와 경호권을 발동하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물리적 저지를 막았다. 이어 의장석에서 농성 중이던 여당 의원들을 차례로 끌어내고, 곧바로 탄핵소추안을 상정해 제안설명도 유인물로 대체한 채 무기명 투표에 들어갔다.
11시 55분 한나라당·새천년민주당·자유민주연합 등 투표에 참석한 195명의 야당 의원들 가운데 193명의 찬성으로 탄핵소추안이 기습적으로 가결된 뒤, 헌법재판소에 소추의결서가 접수되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탄핵소추안 가결과 동시에 야당에 대한 전국민적인 질타가 쏟아졌고, 전국 각지에서 탄핵에 반대하는 촛불시위가 잇따랐다. 각종 시민단체들은 탄핵소추안 가결을 야 3당의 쿠데타, 3·12쿠데타로 규정하고 탄핵안 철회운동에 돌입하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대한변호사협회 등 변호사 단체들도 탄핵철회 촉구 결의문을 채택하는 등 전국이 탄핵사태로 들끓었다.
탄핵안 가결에 대한 국민적인 분노는 4월 15일 치러진 제17대 국회의원총선거에까지 이어져 열린우리당이 과반이 넘는 152석을 차지하고, 제1당이던 한나라당은 121석밖에 얻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제2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은 9석, 자유민주연합은 4석을 얻었다.
탄핵의결서가 헌법재판소에 접수된 뒤, 평균 주 2회씩 7번의 공개변론과 10회에 가까운 평의를 개최하는 등 집중적인 심리가 진행되었다. 대통령에 대한 증인신문은 기각되었고, 4월 30일 최후 변론이 종결된 뒤 헌법재판소는 2주일 동안의 집중 평의를 거쳐 결정문 작성에 들어갔다. 5월 14일 마침내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안 기각 결정을 내림으로써 두 달 동안 계속된 대통령의 권한정지는 자동적으로 해소되고, 탄핵사태는 종결되었다.
-출처:네이버백과사전-

# by | 2009/06/14 22:35 | 인권변호사에서 대통령까지 | 트랙백 | 덧글(0)

[ 탱크킬러 아파치도 떨어트리는 세계최강의 XK-2 최신형 전차 개발 ]

[ 서해상의 근거리 접근 항공기에 대한 격추시현 장면 ]


[ 214급 잠수함 개발 ]



[ 글로벌 호크 도입 직접 지시 ]
[ 주변국을 우려해 실용위성으로 가장한 아리랑 첩보위성 개발 ]
[ 아리랑 첩보위성으로 촬영한 백두산 천지 ]
[ 세계 최강의 K-9 자주포 개발 ]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져 장렬히 전사한 장병앞에
대한민국 국가 원수로써 경건한 마음으로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
노무현 대통령 "방어 능력 없으면 평화 유지 못한다"


유럽순방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노무현 대통령은 중동지역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보좌관들에게 우리 자이툰부대가 있는곳을 방문해서 장병들을 위로하고 싶다며
원래 예정에도 없던 이라크 아르빌에 도착해 자이툰부대 특전사의
노고를 치하하고 그들을 위로하고 있다.
# by | 2009/06/14 22:16 | 5년동안의 업적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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